2026년 1월 베이징에서 열린 중한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언급한 두 개의 성어, ‘이화위귀(以和为贵, yǐ hé wéi guì)’와 ‘화이부동(和而不同, hé ér bù tóng)’은 단순한 전통적 수사가 아니다. 이는 미중 전략 경쟁이 장기화되는 국제 질서 속에서 중한 관계, 나아가 한국 외교·경제 전략의 좌표를 어디에 둘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간접적인 화답이다.

오늘날 한국이 마주한 가장 큰 구조적 제약은 선택의 강요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오래된 공식은 이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반도체, 배터리, 인공지능, 공급망 재편을 둘러싼 미중 갈등은 한국 기업의 의사결정을 정치적 판단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 이 같은 환경에서 ‘이화위귀’는 어느 한쪽으로의 급격한 기울어짐을 경계하라는 메시지로 읽힌다. 갈등을 부정하지 않되, 갈등이 관계의 전부가 되지 않도록 관리하라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몇 년간 중한 관계의 경색은 외교적 문제 이전에 경제적 비용으로 직결됐다. 수출 구조의 경직, 투자 불확실성, 기업 활동의 위축은 모두 한국 경제가 감내해야 할 현실이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양국이 ‘관계 회복’이라는 표현을 반복한 이유는 정치적 체면보다 경제적 안정이 더 절실했기 때문이다. 이화위귀는 이상주의가 아니라, 불확실성의 시대에 필요한 실용적 균형 감각이다.
한편 ‘화이부동’은 한국이 미중 경쟁 속에서 취해야 할 보다 적극적인 전략을 시사한다. 한국은 미중 중 어느 한쪽과 동일해질 필요도, 동일해질 수도 없다. 오히려 한국의 경쟁력은 다름에서 나온다. 미국과는 기술 표준과 안보 협력을, 중국과는 시장과 산업 협력을 병행하는 다층적 구조는 불안정해 보이지만, 현실적으로는 가장 지속 가능한 선택지다.
이번 회담에 200여 명의 한국 기업인이 동행한 점은 상징적이다. 이는 중한 관계가 여전히 경제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정치적 긴장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은 중국 시장을 ‘포기할 수 없는 현실’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진핑 주석이 언급한 “공동 이익의 파이를 키우자”는 표현 역시, 제로섬 경쟁이 아닌 관리된 경쟁 속 협력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중한 경제 관계는 이미 수직적 분업 구조에서 벗어나 수평적 경쟁과 협력의 단계로 진입했다. 반도체, AI, 친환경 산업, 문화 콘텐츠 등에서 양국은 경쟁자이면서 동시에 파트너다. 화이부동은 바로 이 모순적 관계를 유지하는 작동 원리다. 같아지려는 시도는 충돌을 낳고, 완전한 분리는 현실적이지 않다. 다름을 인정한 채 공존하는 것, 그것이 한국 경제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경로다.
결국 이화위귀는 미중 사이에서 한국이 취해야 할 태도의 원칙이고, 화이부동은 그 원칙을 실행하는 방식이다. 어느 쪽에도 예속되지 않되, 어느 쪽과도 단절되지 않는 전략. 이번 중한 정상회담은 이러한 한국의 입장을 재확인하는 자리였다.
천 년 전의 성어가 오늘날 다시 소환된 이유는 분명하다. 미중 경쟁이라는 거대한 구조 속에서 한국은 새로운 답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지혜를 현재의 언어로 재해석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이화위귀와 화이부동은 선택을 유예하자는 말이 아니라,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한 전략적 사고다. 그리고 그 사고의 성패는 결국 외교가 아니라, 한국 경제의 지속 가능성에서 판가름 날 것이다.
윤교원 대표 / The K Media & Commerce, kyoweon@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