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Nadia Sussman의 기사(The Trump Administration’s Plan to Remake Public Education, ProPublica)를 번역, 분석한 것입니다.

미국의 공교육이 중대한 변곡점에 서 있다. 최근 미국 교육 정책을 둘러싼 논의는 단순한 제도 개편이나 예산 조정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교육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인식 전환에 가깝다. 공교육을 민주주의의 기반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개인이 선택하는 하나의 서비스로 볼 것인가. 이 질문 앞에서 미국은 점점 후자의 방향으로 기울고 있다.
공교육, 공공재에서 선택재로
미국 공교육의 전통적 역할은 분명했다. 공립학교는 계층·인종·지역을 넘어 최소한의 교육 기회를 보장하는 사회적 안전망이었고, 연방 정부는 그 안전망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키는 최종 책임자였다. 교육은 개인의 성취 이전에 공동체의 지속을 위한 공공재였다.
그러나 최근의 변화는 이 전제를 근본부터 흔들고 있다. 공교육은 더 이상 ‘반드시 유지해야 할 공적 기반’이 아니라, 여러 선택지 중 하나로 재정의되고 있다. 바우처 제도, 차터스쿨 확대, 홈스쿨링 합법화 논의는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교육받을 권리가 아니라 교육의 시장화다. 이 과정에서 국가의 역할도 달라진다. 국가는 교육을 보장하는 주체가 아니라, 다양한 선택지를 중개하는 관리자로 후퇴한다. 공교육의 실패를 정책적 결함보다는 개인의 선택에 따른 결과로 간주한다.
하나의 시민을 길러내던 학교의 해체
공교육의 또 다른 핵심 기능은 '공통의 시민'을 양성하는 것이었다. 학교는 공통의 역사 인식과 언어, 규범을 형성하는 장(場)이 되었으나, 교육 주체가 주(州)나 지역, 가정 단위로 파편화되면서 사회를 결속하던 공통의 토대는 점차 약화될 것이다.
교육 내용은 점점 정치적·종교적·이념적 성향에 따라 달라지고, 학생들은 같은 국가 안에서도 서로 다른 세계관 속에서 성장하게 된다. 이는 다양성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접착력이 사라지는 문제다. 공교육의 해체는 곧 시민 사회의 해체로 이어질 수 있다.
‘비판적 시민’에서 ‘편향성을 가진 개인’으로
교육의 목적 또한 변하고 있다. 질문하고 토론하며 타인의 관점을 이해하는 시민보다, 특정 가치와 정체성을 확고히 내면화한 개인을 길러내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비판적 사고는 종종 ‘혼란’으로, 다원성은 ‘위험’으로 간주된다.
이는 단지 미국 내부의 문화 전쟁에 그치지 않는다. 교육은 언제나 사회의 미래를 미리 보여주는 거울이다. 질문하지 않는 교육은 결국 침묵하는 사회를 만든다.
미국의 변화, 세계의 변화
미국은 여전히 세계 교육 담론의 중심 국가다. 미국에서 ‘공교육 축소’와 ‘선택권 강화’가 정당화될수록, 다른 나라들 역시 이를 정책 명분으로 차용할 가능성이 높다. 공교육의 공공성보다 효율과 성과를 앞세우는 논리가 국제기구와 개발 담론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이미 심각한 사교육 의존 구조 속에서, 공교육의 역할이 더 약화될 경우 교육 격차는 ‘문제’가 아니라 ‘당연한 결과’로 고착될 위험이 있다.
공교육은 왜 필요한가
공교육은 완벽한 제도가 아니다. 비효율도 있고, 시대 변화에 뒤처진 부분도 있다. 그러나 공교육은 여전히 사회가 스스로를 재생산하는 최소한의 장치다. 그것은 단지 지식을 전달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기 위한 공통의 언어를 만드는 공간이다.
공교육이 흔들릴 때, 흔들리는 것은 학교 건물이 아니라 사회의 중심축이다. 교육을 개인의 선택 문제로만 환원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함께 배우는 사회’가 아니라 ‘각자 도생하는 사회’로 이동하게 된다. 미국 공교육의 변화는 우리에게도 동일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어떤 사회를 다음 세대에게 넘겨줄 것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결국, 교육을 어떻게 바라 보느냐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