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은 힘이 아닌 언어에서 태어났다 : 권리의 철학적 기원
근대 사회는 ‘법치(法治)’를 문명화의 상징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법이 과연 ‘지배의 언어’인가, 아니면 ‘자유의 언어’인가 하는 물음은 여전히 유효하다.
칸트는 이 물음에 대해 명료하면서도 혁명적인 답을 제시했다.
그에게 법은 강제의 기술이 아니라 자유의 문법이었다.
법은 인간의 외적 행위를 규제하지만, 그 근거는 언제나 이성적 자율성, 즉 스스로 입법하는 능력에 있었다.
“인간은 단지 수단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로 대우되어야 한다”는 칸트의 정언명령은,
법이 언어로 존재해야 하는 철학적 이유를 드러낸다.
법은 단지 조항과 형벌의 체계가 아니라,
인간이 자신을 이성적 존재로 말할 수 있는 언어의 체계이기 때문이다.
칸트에게 법은 단순히 국가 권력의 명령이 아니다.
그는 『법론(Metaphysik der Sitten)』에서 법을 이렇게 정의했다.
“법은 한 사람의 자유가 다른 사람의 자유와 조화될 수 있도록 하는 외적 조건의 총체이다.”
이 정의는 철저히 언어적이다.
법은 폭력의 도구가 아니라, 서로의 자유를 조율하기 위한 공동의 문장이다.
즉, ‘내 자유의 문장’이 ‘너의 자유의 문장’과 모순되지 않도록 만드는 언어적 약속의 체계다.
칸트는 인간을 ‘자율적 존재’로 보았다.
자율성은 타인의 명령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부여한 법칙에 복종하는 능력이다.
이때 법은 단순한 강제가 아니라, 자기 언어를 통해 자신의 행위를 규정하는 도덕적 합의다.
결국, 법은 이성이 스스로에게 건네는 언어적 약속이며,
권리는 그 약속을 주장할 수 있는 능력이다.
로크와 루소가 자연법과 사회계약을 통해 권리의 언어를 구성했다면,
칸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법의 근거를 인간 내면의 도덕적 언어”에서 찾았다.
자연법은 “모두에게 공통된 이성의 법”을 말하지만,
칸트는 그 이성이 형식적 도덕 원리, 즉 ‘정언명령’의 형태로만 유효하다고 보았다.
정언명령이란 이렇게 말한다.
“네 행위의 준칙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법칙이 되도록 행위하라.”
이 문장은 법의 본질을 완벽히 언어로 표현한다.
‘법’은 결국 보편적 언어를 향한 인간의 의지이다.
칸트에게 권리는 단순한 허용이 아니라,
보편적 대화의 문법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이었다.
그렇기에 칸트의 법은 외적 강제력을 수반하면서도,
그 뿌리는 도덕적 자율성에 있었다.
이것이 바로 “법은 힘이 아닌 언어에서 태어났다”는 명제가 칸트 철학에서 완전한 의미를 갖는 이유다.
칸트의 철학에서 도덕법칙은 일종의 언어 구조다.
그는 이성의 법칙을 언어적 형식으로 표현했다.
즉, 모든 도덕 명령은 ‘문장’의 형태를 취한다.
“거짓말하지 말라.”
“약속을 지켜라.”
이 문장들은 단순한 명령이 아니라, 이성적 주체들이 공유하는 언어적 규칙이다.
따라서 법은 언어적 문법의 연장선이다.
법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문법적 구조(조건) 와 의미의 일관성이 필요하다.
법률문이 모호할 때 혼란이 생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법이란 언어의 형식 그 자체이며, 권리란 그 언어를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이다.
칸트는 이를 ‘의무(duty)’라는 개념으로 구체화했다.
그에게 권리란 ‘타인의 자유와 양립할 수 있는 나의 자유’이며,
그 자유는 언제나 이성의 문장으로 정당화될 수 있어야 했다.
따라서 “권리의 언어”란 곧 “이성이 타자와 소통하는 도덕의 언어”였다.
칸트는 인간을 ‘자율적 입법자’로 정의했다.
즉, 법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말해지는 것이다.
그가 『윤리형이상학 정초』에서 밝힌 핵심 명제는 이렇다.
“자유로운 의지는 스스로 법칙을 부여하는 의지이다.”
이 말은 단순한 도덕론이 아니라, 철저한 언어철학적 선언이다.
자유로운 인간은 ‘자신의 언어로 법을 말할 수 있는 자’다.
타인의 명령에 복종하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문장을 만들고 그 문장에 책임지는 존재.
따라서 법은 외부의 명령체계가 아니라 자율적 언어 행위의 구조다.
이것이 칸트가 주장한 “자유의 공화국(kingdom of ends)”의 의미다.
그곳에서 모든 인간은 법의 피지배자가 아니라,
법의 언어를 함께 쓰는 공동 저자(co-author) 로 존재한다.
오늘날 인공지능이 판결문을 작성하고, 알고리즘이 정책을 결정하는 시대에,
칸트의 법철학은 다시 중요해지고 있다.
AI는 데이터를 계산하지만, ‘보편적 정언명령’을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
칸트의 철학은 법이 단순히 논리적 명령이 아니라,
이성적 존재 간의 언어적 합의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기계는 법의 형식을 모방할 수 있지만,
‘법의 정신’을 언어로 사유할 수는 없다.
따라서 21세기의 법은 기술이 아니라 철학에 의해 완성된다.
법의 언어를 잃는 순간, 권리는 데이터로 환원되고 인간은 ‘입력값’이 된다.
칸트가 말한 “법은 자유의 외적 조건”이라는 문장은,
AI 사회에서도 여전히 인간이 말할 수 있는 법의 언어를 지키라는 경고로 읽힌다.
칸트는 법을 도덕의 외적 형태라 불렀다.
그 말은 곧, 법이 도덕적 이성의 언어로 쓰인 문장이라는 뜻이다.
그 문장은 “자유로운 인간이 서로를 존중하기 위해 맺은 말의 약속”이다.
자연법은 존재의 언어였고, 사회계약은 합의의 언어였다면,
칸트의 법은 자율적 이성의 언어였다.
그에게 권리는 “내가 법의 언어를 말할 수 있는 자유”이며,
그 자유는 모든 인간에게 동등하게 주어진다.
결국, 법은 힘이 아닌 언어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그 언어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이성이 스스로에게 건네는 보편적 문장으로 존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