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문제, 왜 이렇게 풀었는지 설명해 볼래?”
중학교 2학년 민준이를 처음 만난 날, 책상 위에는 문제집 두 권과 오답노트 한 권이 놓여 있었다. 표지는 깨끗했지만 안쪽은 달랐다. 빨간 동그라미와 엑스 표시가 빼곡했다. 성적은 중하위권. 어머니는 말했다.
“학원도 다니고 문제도 많이 푸는데, 점수가 안 올라요.”
나는 문제 하나를 가리키며 민준이에게 물었다.
“이 문제, 왜 이렇게 풀었는지 설명해 볼래?”
민준이는 연필을 굴리다 고개를 숙였다.
“그냥… 이렇게 하라고 배웠어요.”
답은 맞았지만 설명은 없었다. 이 짧은 대화가 코칭의 출발점이었다.
무너진 건 실력이 아니라 연결
민준이의 학습 기록을 살펴보면 성실함은 분명했다. 숙제는 빠지지 않았고, 문제 풀이 양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단원을 바꾸면 성적이 다시 떨어졌다. 이유는 명확했다. 이전 단원의 개념이 다음 단원과 연결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차방정식을 풀 때 식 변형은 곧잘 했지만, ‘왜 양변에 같은 수를 더하거나 빼는지’에 대한 이해는 없었다. 이는 초등 시절 등식 개념이 충분히 자리 잡지 않은 채 넘어왔다는 신호였다. 중학교 수학은 새로운 내용을 더하기보다, 기존 개념을 다른 언어로 다시 묻는다. 이때 연결이 약한 아이는 따라갈 수 없다.
많은 아이들이 이 지점에서 “나는 수학이 안 맞아”라고 결론 내린다. 하지만 실제로는 수학이 아니라 학습 방식이 아이와 맞지 않았던 것이다.
코칭 현장에서 반복되는 공통 장면
비슷한 사례는 많다. 중학교 1학년 지수는 분수 계산은 잘했지만 문자식이 나오자 손을 놓았다. 이유를 물으면 “숫자가 없어서 헷갈린다”고 했다. 이는 문자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수’라는 개념이 자리 잡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난이도가 아니라 개념 언어였다.
이런 아이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은 세 가지다.
첫째, 문제를 풀 때 설명을 요구하면 침묵이 길어진다.
둘째, 공식은 외웠지만 언제 쓰는지는 모른다.
셋째, 틀린 문제를 다시 보면 “이건 실수”라고 말한다. 실수가 아니라 이해의 공백인데도 말이다.
현장에서 느끼는 것은 분명하다. 성적이 떨어진 아이일수록 더 많은 문제를 풀게 하면 상황은 악화된다. 아이는 스스로를 더 무능하다고 느낀다. 이 악순환을 끊는 방식이 되살리기 학습이다.
되살리기 학습
민준이의 코칭은 의외로 단순한 규칙에서 시작했다. 문제 수를 절반으로 줄이고, 설명 시간을 두 배로 늘리는 것이었다. 하루에 다섯 문제만 풀되, 각 문제를 말로 설명하게 했다. 설명이 막히는 순간, 그 지점이 되살려야 할 개념이었다.
방정식 단원에서는 계산을 멈추고 저울 그림을 그렸다. ‘같음’의 의미를 시각화했다. 민준이는 처음엔 유치하다고 웃었지만, 며칠 뒤 말했다. “이제 왜 이렇게 하는지 알 것 같아요.” 이 말이 나온 시점부터 변화는 시작됐다.
오답노트도 바뀌었다. 답을 다시 적는 대신, “내가 여기서 헷갈린 이유”를 한 문장으로 쓰게 했다. 틀린 문제는 실패가 아니라 지도가 됐다. 한 달쯤 지나자 민준이는 새 문제를 풀 때 중간에 멈춰 스스로 질문하기 시작했다. “이건 저번 개념이랑 같은 건가요?”
시험 성적은 즉각적으로 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두 번째 시험에서 변곡점이 왔다. 평균을 넘겼고, 무엇보다 시험 후 표정이 달라졌다. “다 풀고 나서도 왜 이렇게 했는지 다 기억나요.” 이 말은 단순한 점수 상승보다 중요한 신호였다.
학습을 다시 설계하다

이 코칭에서 바꾼 것은 아이가 아니다. 수학을 대하는 구조였다. 되살리기 학습은 느려 보이지만, 결국 가장 빠른 길이다. 이해가 복원된 아이는 다시 무너지지 않는다. 새로운 단원이 나와도 연결점을 찾는다.
중학교 수학이 무너졌다고 느껴질 때, 아이에게 더 채찍을 들 필요는 없다. 오히려 잠시 멈추고 물어야 한다. “어디서부터 헷갈렸을까?” 이 질문 하나가 학습의 방향을 바꾼다.
아이의 수학 성적이 정체돼 있다면, 문제집을 더 사기 전에 설명부터 시켜보자. 말로 설명하지 못하는 개념이 있다면, 그곳이 되살리기의 출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