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이란 정부가 시위 가담자 800여 명에 대한 사형 집행을 전격 취소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이란의 이러한 조치에 대해 감사와 깊은 존경의 뜻을 표했다. 이번 사건은 경제적 문제로 촉발된 이란 내 대규모 시위 이후 발생한 인도주의적 현안으로, 미국 정부는 그동안 사형 중단을 강력히 촉구해 왔다. 백악관 대변인 또한 관련 상황을 정밀하게 모니터링하고 있으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대응할 것임을 시사했다.
죽음의 행렬이 멈춰선 테헤란의 새벽, 증오를 넘어선 '생명'의 역설
2026년 1월 16일, 전 세계 외교가는 귀를 의심케 하는 성명 하나에 술렁였다. "이란 정부에 큰 존경(Great Respect)을 표한다." 이 발언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서로를 향해 거친 언사를 퍼붓던 두 나라 사이에서 '존경'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온 것은 가히 지각변동에 가까운 사건이다.
이 극적인 반전의 이면에는 '800'이라는 숫자가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은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단 하룻밤 사이에 교수대 앞에서 삶으로 돌아온 800명의 생명, 그리고 그들을 기다리던 800가족의 눈물 어린 환희를 의미한다. 오랫동안 이슬람권의 척박한 땅에서 복음의 씨앗을 심으며 사람의 마음을 읽어온 필자의 눈에, 이번 사건은 단순한 정세 변화 이상의 '영적 울림'으로 다가온다. 증오의 사슬이 끊어지는 순간은 언제나 거창한 회담장이 아니라, 가장 낮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생명에 대한 경외감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벼랑 끝에서 들려온 복음: 800건의 사형 집행 전격 취소
사건의 발단은 2025년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란 전역을 휩쓴 살인적인 물가 상승과 인플레이션은 국민의 삶을 벼랑 끝으로 몰았다. 배고픔을 견디다 못한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젊은이가 체포되어 사형 선고를 받았다. 2026년 1월 15일은 이들 중 800여 명에 대한 집행이 예고된 운명의 날이었다.
테헤란의 교도소 담장 너머로 절망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을 때, 믿기 힘든 소식이 전해졌다. 이란 당국이 예고된 모든 사형 집행을 전격 취소한 것이다. 이는 현대 이란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인도주의적 결단이었다. 백악관의 캐롤라인 레빗 대변인은 긴급 브리핑을 통해 "집행 예정이던 800건의 사형이 멈췄음을 확인했다"라고 공식 발표했다. 국가라는 거대한 기계가 굴리던 죽음의 톱니바퀴가 인간의 '자비'라는 작은 모래알 하나에 멈춰 선 순간이었다.
트럼프의 '큰 존경': 외교적 수사인가, 진심 어린 화답인가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은 즉각적이고도 파격적이었다. 그는 자신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 터키어로 된 문장을 인용하며 이란을 향해 이례적인 찬사를 보냈다.
"어제 집행될 예정이었던 800건이 넘는 모든 사형을 이란 정부가 취소한 것에 대해 큰 존경심을 표합니다."
평소 이란에 대해 '최대의 압박'을 가하던 그가 '존경'을 언급한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는 이 결정을 자신의 외교적 압박에 대한 긍정적 화답으로 정의하며 승전보처럼 울렸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정치적 계산을 떠나, 한 국가의 지도자가 내린 '생명 존중'의 결단에 대해 인간 대 인간으로서 느끼는 경탄이 섞여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강경함과 부드러움을 오가는 그의 특유의 협상 전술일 수도 있으나, 800명의 목숨이 살아났다는 사실 앞에서는 그 어떤 정치적 해석도 빛을 잃는다.
시장통에서 만난 평화: 우리가 이 사건에서 읽어야 할 것
필자가 이슬람권에서 오랜 시간 사역하며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다. 정치는 머리로 하지만, 평화는 가슴으로 한다는 점이다. 테헤란의 전통시장 '바자르'에서 만난 평범한 아버지들은 미국과의 핵 합의보다 내 자식이 오늘 저녁 무사히 식탁에 앉는 것을 더 소중히 여긴다. 이번 800명의 사형 취소는 이란 지도부가 국제 사회의 압박을 견디기 위한 전략적 후퇴일 수도, 내부 불만을 달래기 위한 고육지책일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옵션'들 속에 이제 '대화'와 '관용'이라는 메뉴가 추가되었다는 점이다. 레빗 대변인이 언급한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라는 말은 이제까지의 '군사적 타격'이나 '경제 제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상대가 보여준 자비에 대해 우리도 자비로 답할 수 있다는 '평화의 옵션'을 포함한다. 얼어붙은 땅 밑에서도 생명은 꿈틀대듯, 수십 년간 쌓인 불신의 얼음벽에 미세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일시적 해빙을 넘어 영원한 봄으로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이 사건이 잠시 스쳐 지나가는 소나기인가, 아니면 대지를 적시는 봄비인가. 800명의 생명을 구한 이 결단이 단발성 이벤트로 끝난다면 역사는 이를 '기묘한 에피소드'로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이 작은 불씨를 소중히 여겨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시작점으로 삼는다면, 이는 중동 평화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수 있다.
이 시대는 너무나 쉽게 '죽음'과 '증오'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진정한 강함은 상대를 굴복시키는 칼끝이 아니라, 휘두르려던 칼을 거두는 용기에서 나온다. 트럼프의 '존경'과 이란의 '취소'가 만난 이 지점에서, 우리는 비로소 인간이 인간을 향해 가질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을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