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명조차 허락되지 않은 사막의 오후
오늘은 유엔이 지정한 ‘세계 여성 할례 철폐의 날’이다. 수십 년 전, 내가 처음 이슬람권에 발을 디뎠을 때 마주했던 그 충격적인 침묵을 기억한다. 마을 어귀에서 들려오던 어린 소녀의 날카로운 비명, 그리고 그 비명을 ‘성스러운 통과례’라며 입을 막던 어른들의 거친 손길. 이제 이 깨어진 어린 영혼들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한다.
우리는 흔히 여성 할례(FGM: Female Genital Mutilation)를 멀리 떨어진 아프리카나 중동의 미개한 풍습이라 치부하곤 한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지리적 거리가 먼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종교’라는 거룩한 외피를 입고, ‘전통’이라는 견고한 성벽 뒤에 숨어 자행되는 인류 공통의 죄성(罪性)에 관한 문제다. 나는 이슬람권 현장에서 기독교의 ‘생명’과 이슬람의 ‘순결’이 어떻게 충돌하고, 또 화해해야 하는지 뼈저리게 묵상했다.
정결을 향한 갈망, 그러나 빗나간 화살
무슬림들은 정결(Taharah)을 목숨처럼 소중히 여긴다. 그들이 여성 할례를 고수하는 이면에는 자기 자녀를 정결한 신부로 만들어 신의 축복을 받게 하려는 비뚤어진 부성애와 모성애가 깔려 있다. 꾸란에는 직접적인 할례 명령이 없지만, 일부 하디스(예언자의 언행록)의 자의적 해석은 이 관습을 ‘수나(예언자의 전통)’로 둔갑시켰다. 그들에게 정결은 육체를 깎아내서라도 도달해야 할 ‘신의 명령’이다.
하지만 기독교의 시각에서 정결은 밖에서 안으로 깎아내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밖으로 흐르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사람의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고,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라고 말씀하셨다(마가복음 7:15). 진정한 정결은 육체의 일부를 절단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보혈로 마음의 할례를 받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이슬람의 사랑이 ‘조건을 갖추어 신에게 도달하려는 노력’이라면, 기독교의 사랑은 ‘조건 없는 자를 찾아오신 은혜’다. 소녀들의 몸에 칼을 대어 강제로 정조를 지키게 하려는 시도는 인간의 의지로 거룩을 성취하려는 율법적 강요에 불과하다. 그것은 창조주가 주신 고귀한 신체에 대한 모독이며,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는 일이다.
십자가의 고통과 소녀의 눈물
이슬람권에서 살아가면서, 할례로 인해 평생을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트라우마 속에 살아가는 여인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십자가 위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를 외치셨던 예수의 음성을 듣는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인간의 고통 속으로 직접 뛰어드신 사건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통을 강요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고통을 대신 짊어지시는 분이다.
이슬람권의 많은 어머니는 자녀가 할례를 받지 않으면 마을에서 매춘부 취급을 받거나 결혼을 할 수 없다는 두려움 때문에 칼을 든다. 그들에게 사랑은 ‘두려움’의 다른 이름이다. 그러나 성경은 선포한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요한일서 4:18).
그들에게 우리가 전해야 할 것은 그들을 정죄하는 것이 아니다. 두려움 때문에 칼을 잡았던 그 손을 사랑으로 어루만지며, “당신의 딸은 아무것도 깎아내지 않아도 그 자체로 하나님의 완벽하고 아름다운 창조물”임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결박을 푸는 것이지, 새로운 결박을 채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통이라는 우상을 무너뜨리는 사랑의 손길
여성 할례가 종교적 의무가 아닌 ‘가부장적 관습’의 산물임을 알리는 작업은 고독하고 위험한 길이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이 시대의 기독교인들이 져야 할 십자가다. 우리는 무슬림들과 대화해야 한다. 꾸란 95장 4절은 “우리는 인간을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창조했다”라고 말한다. 그들이 믿는 경전의 정신으로 돌아가더라도, 하나님의 창조물을 인위적으로 훼손하는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
실제 생활에서 우리가 실천해야 할 사랑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할례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여인들을 위해 병원 문을 열어주고, 그들의 아이들을 교육하며, 마을 공동체 안에서 ‘할례받지 않은 소녀’들이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을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낮은 곳으로 임하신 예수의 발자취다.
이제 2030년까지 이 비극을 종식하겠다는 국제사회의 약속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먼저 응답해야 한다. 그것은 교파를 초월하고 종교의 벽을 넘어, 고통받는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창조주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기독교와 이슬람, 두 종교는 정결과 신을 향한 헌신이라는 공통된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방법론에서 하나는 ‘절단’을 택했고, 하나는 ‘용납’을 택했다. 나는 확신한다. 세상을 구원하는 것은 날카로운 칼날이 아니라, 흉터 난 손으로 우리를 안아주시는 예수의 그 따뜻한 체온임을.
오늘, '세계 여성 할례 철폐의 날'을 맞아 우리 마음속의 차가운 칼날부터 내려놓자.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했던 우리의 방관도 하나의 칼날이었음을 고백하자. 사막의 소녀들이 더 이상 비명 속에 잠들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온전한 몸으로 마음껏 뛰어놀며 웃을 수 있는 그날까지, 우리의 기도는 멈추지 말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