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주요 지역의 임대차 시장에서 전세와 월세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다. 최근 강남·용산·마포 등 주요 지역에서는 전세가 8억 원이던 단지에서 보증금 9억 원에 월세 20만 원 조건이 등장하는 등, 전셋값을 뛰어넘는 월세가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이 단순한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부동산 시장 구조 자체가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분석한다. 10·15 부동산 대책 이후 전세 매물이 급감하면서 수요가 월세로 집중됐다. 결과적으로 ‘전세 매물 급감 → 월세 수요 폭증 → 월세 보증금 상승 → 전셋값 추월’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시작된 것이다.
세입자들은 기존의 전세금보다 더 많은 보증금을 내고, 여기에 월세까지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전세 제도의 붕괴가 서민 주거비 상승으로 직결되는 구조다.
“현재 시장은 명확히 구조적 전환기에 들어섰다.” 수원대학교 부동산학전공 노승철 교수는 “전세 제도의 근간이 흔들리면서 월세 중심의 시장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보유세 부담이 전세 공급자에게 전가되고, 토지거래허가제 강화로 신규 공급이 제한되면서 월세 전환이 가속화되는 중”이라며 “이러한 현상은 단기 조정이 아닌 중장기 구조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노 교수는 또 “임차인들은 보증금과 월세를 동시에 감당해야 하고, 임대인 역시 세금 부담을 보전하기 위해 월세를 높이고 있다”며 “정부의 정책 방향이 전세 회복보다 월세 제도 안정화에 초점을 맞춰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시장 상황을 보면, 전세 계약이 빠르게 줄고 ‘반전세’와 ‘고보증금 월세’가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들은 “이제는 전세 계약을 찾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며 “세입자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월세로 전환하고 있다”고 전했다.
금리 상승과 대출 규제 강화도 이러한 구조 변화를 가속화했다. 전세자금대출의 문턱이 높아지면서 세입자들이 전세 대신 월세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월세 시장으로 몰린 수요는 다시 보증금 인상 압박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편, 일부 전문가들은 “전세의 급감은 단기적으로 집값 안정 효과를 가져올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주거 양극화를 심화시킬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고소득층은 고보증금 월세를 감당할 수 있지만, 중저소득층은 주거 이동이 제한돼 주거 불안정이 심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부동산 시장에서 ‘전세의 종말’이 거론되는 이유는 단순히 가격 상승이 아니다. 이는 주거 형태, 세제 구조, 정책 방향이 맞물린 결과로, 한국의 주거 시스템이 ‘전세 중심’에서 ‘월세 중심’으로 이행하는 결정적 전환점을 맞이했음을 의미한다.
노승철 교수의 말처럼, 지금 필요한 것은 단기 대책이 아니라 시장 안정과 세입자 보호를 동시에 고려한 장기적 정책 패러다임이다. 월세의 상향 평준화 시대, 정부의 대응이 늦어진다면 주거 양극화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