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군 특수전전단 특수전요원(UDT/SEAL)들이 지난 2일부터 강원도 동해안과 산악 일대에서 ‘2026년 혹한기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특수전요원들은 지난 3일과 4일에는 동해의 높은 파도를 뚫고 고무보트(CRRC)를 이용한 해상침투 훈련을 마쳤으며, 5일부터는 험준한 산악 지대로 이동해 은거지 구축, 특수정찰, 설상 등 종합전술훈련을 이어간다고 해군은 밝혔다.

[대한민국 UDT/SEAL 부대 연혁]
1950년 6월, 한국전쟁 발발 후 1950년 10월 대위 노능서 등 15명이 일본의 美훈련소에 파견되어 미해군 UDT 조지 에치슨 중위 등에게 교육훈련을 받고 귀국하여 1951년 2월 CIA산하 영도유격대(CIA/JACK)를 창설하였다.

1951년 6월 경 모든 유격훈련과정을 마친 대원들 가운데 수영에 능숙하고 배를 잘 탈 수 있는 대원을 선발하여 미해군 UDT 조지 에치슨 중위에게 대한민국 최초로 16주 과정의 미해군 UDT 과정을 이수하고 해상대('BG'-SMG/UDT임무)를 창설하였다.







해상대는 미해군 UDT요원들과 함께 또는 단독으로 여도를 중심으로 원산에서 청진에 이르는 전 해안을 작전지역으로 설정하고 밤에 상륙했다가 동트기 전에 해상으로 철수하는 야간작전에 주력했다.
본격적인 적지침투 작전은 1952년 1월 하순부터 이후 총 18차례의 작전을 수행하였는데, 이들은 대한민국 UDT의 원조라고 자부심을 가졌다.

한편, 1952년 1월 함대 정보국(NID/ONI)은 ‘북한에 대한 요인암살 및 첩보수집활동’을 위한 대한민국 UDT 창설을 기획하였다.

1952년 11월 영도유격대가 해체되고,
대한민국 UDT창설을 위한 교관요원 양성을 위해 KMAG 주관으로 엄격한 선발과정을 통해
1952년 11월 김성권 중위(해사 5기) 대한민국 최초 미해군 UDT과정 유학(class 7),

이후 1953년 7월 임철규 중위(해사 4기), 임진모 1조가 미해군 UDT 과정 유학(class 9),


1954년 4월 장인표 중위(해사 5기), 조학산(사후 37기) 미해군 UDT 과정 유학(class 11),
1954년 12월 이태기, 김영남, 최인순, 김용성, 장을순, 신춘균 미해군 UDT 과정 유학(class 13),

1955년 7월 백인기, 이장식, 김응천, 김일성, 신복현, 심관식 미해군 UDT 과정 유학(class 14)

등 매년 UDT 유학을 실시하여 교관요원을 양성하였으며,
1954년 내륙정찰조, 해안정찰조, 수중정찰조, 폭파조 등 4개 정찰작전대, 총 113명으로 대한민국 UDT를 편조,
1955년 0월 UDT 분견대 교육훈련대 창설,
1955년 11월 제1차 UDT 과정 수료,

1956년 1월 해안정찰을 시작으로 국내외 특수작전 및 비밀작전을 수행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타군 위탁교육 현황]
1960년 UDT 6차 육군첩보대 HID 요원 위탁교육 시작(UDT 18차 박0규 HID 대장 역임)





1963년 UDT 9차 공군첩보대 AISU 요원 위탁교육 시작(UDT 11차 도0수 실미도 소대장 역임)


1965년 UDT 11차 해병특수수색대 요원 위탁교육 시작(UDT 16차 석0호 MIU 훈련관/ UDT 18차 김0빈 MIU 공작관 역임)


1971년 UDT 17차 육군특전사 요원 위탁교육 시작


1967년 7월부터 UDT 요원 14명을 시작으로 UDT요원 공수교육 위탁교육 실시



한편 1955년~1970년(UDT 1차~16차)까지 UDT요원 390여 명 중 140여 명을 해상정찰대 북파공작원으로 파견 및 전속시켰으며, 해상정찰대 內 UDT요원들은 자체적으로 UDU라고 불렀으며, 해상정찰대로 파견 및 전속된 UDT요원들이 1970년 해군의 마지막 북파공작까지 실질적으로 대북 특수임무를 수행하였다.

1971년 UDT 요원들을 교관요원으로 전속시켜 UDU 교육대를 창설하였고, 1971년 10월 첫기수를 배출하였는데 UDU 교육대 출신 요원들은 대북특수임무를 수행한 사실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