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
무성한 말, 말들이 참 많이 쏟아지는
낯섦과 익숙함에 엇갈린 말속, 말들
내리고 타는 역마다
하여간에 정겹다
순박한 말들 속에 끼어든 야속한 말
만남과 헤어짐의 상투적 말, 말들이
오가듯 할 말만 하고 가는 말들,
겸애다
역사 앞 매표소는 차분히 말이 줄고
텅텅 빈 플랫폼은 속애(俗埃)의 병 앓다가
혀 짧은 철로의 퇴역,
폐역이 참 아프다
-이 종근
■ 필자는 길 위의 모든 순간이 한 편의 문학이 된다고 믿습니다. 여기에 내놓은 시조, 「역」또한 그러한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우리는 종종 '역'이라는 공간을 마주합니다. 그곳은 단순히 교통수단을 갈아타는 곳을 넘어, 수많은 사람의 '말(言)'들이 부딪히고 흩어지는 삶의 한 단면을 보여줍니다.
처음 '역'이란 소재로 문장을 쓸 때, 내 귓가에는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정겨운 대화, 낯선 이들의 목소리, 때로는 얄팍하고 상투적인 말들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혼돈 속에서 한결같이 나는 이 '정겨움'을 느끼려고, 스쳐 지나가는 인연들 속에서 '겸애(兼愛)'를 헤아립니다. 그것이 혼잡한 도시 속에서 내가 붙잡고 싶었던 인간적인 온기입니다.
그러나 '역'은 또한 시간과 역사를 담고 있는 공간입니다. '역(驛)'이라는 글자 안에 '말 馬'가 숨어 있음을 인지하는 순간, 이 시는 단순한 '언어의 역'을 넘어 '말이 오가던 역'의 깊은 역사성까지 품습니다. 2026년이 역동적인 '붉은 말의 해', 즉 병오년(丙午年)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시 속의 '말 馬'는 단순한 옛것이 아닌, 새로운 시대의 활력과 역사의 연속성입니다. 과거 '말 馬'이 활발히 오가던 옛 역은 소통과 움직임의 상징입니다. 1연의 "무성한 말, 말들이 참 많이 쏟아지는" 대화들은 비단 언어적인 것뿐 아니라, 이러한 '말 馬'들이 내뿜던 활기와 움직임의 잔향으로 느끼기에 충분합니다.
추후,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은 변합니다. 사람들로 북적이던 역은 점점 한산해지고, 마침내 '폐역'이 됩니다. 물리적으로도 '말 馬'의 역할을 잃고 퇴역한 철로처럼, '말(言)'이 사라진 고요함 속에서 역은 '속세의 티끌; 속애(俗埃)'로 병들어 갑니다. 이 '아픔'은 단순히 잊힌 공간에 대한 연민을 넘어, 그 역을 통해 이어졌던 수많은 삶의 이야기가 사라지고, 소통의 흔적마저 지워지는 것에 대한 깊은 슬픔을 담습니다.
시조, 「역」은 삶의 역동성과 쓰러져가는 역사를 언어와 공간의 중층적인 의미를 빌어 탐색한 시조입니다. 정형 시조와 같이 명징하고 절제된 형식 속에 삶의 유한함과 소통의 본질을 담아냅니다. ‘2026년 붉은 말의 해'를 맞이하며, 이 시조가 과거의 역동성을 기억하고, 현재의 소통을 돌아보며, 미래의 새로운 움직임이 희망으로 작동할 수 있는 '역'이길 소망합니다.
■ 이종근 시인은 한국문인협회 시창작과정 및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을 수료하고 중앙대학교(행정학석사)를 마침.『미네르바』및『예술세계(한국예총)』신인상으로 문단에 나옴.《국립임실호국원나라사랑시공모》,《제주문학관개관기념문예작품공모》,《천안문협창립50년문학작품공모》및《문경새재여름시인학교시조공모》,《노산시조백일장공모(경남시조시인협회)》,《진주시조백일장공모》등에서 수상함. 그리고『서울시(詩)-모두의시집(한국시인협회)』,『수원시민창작시공모(수원문화재단)』,『문예바다공모시당선작품(제1집)』,『부마민주항쟁문학상수상작품집1(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국제신문)』,『소금과시·시인선188;테마시"물"』등에 참여함. 아울러 <한국예술인복지재단창작지원사업>,<충남문화관광재단> 등의 문학창작지원금을 수혜함. 시집으로는『광대, 청바지를 입다』,『도레미파솔라시도』등이 있음. onekorea2001@naver.com


















